법이 너무 느리게 바뀐다고 느낄 때가 있다.
특히 피해자가 계속 생기고, 오래된 제도의 문제점이 이미 여러 번 드러났는데도 개정이 지지부진하면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묻게 된다.
“도대체 왜 이렇게 오래 걸리지?”
“유독 한국만 이런 건가?”
결론부터 말하면, 법 개정이 느린 건 어느 나라나 어느 정도 공통된 현상이다. 법은 국민 전체에 영향을 주는 제도이기 때문에 원래 쉽게, 즉흥적으로 바뀌지 않도록 설계되어 있다. 다만 한국은 그중에서도 절차가 길고, 정치적 대치의 영향이 크며, ‘패스트트랙’조차 실제 체감 속도는 느린 편이라 답답함이 더 크게 느껴진다.
왜 법 개정은 원래 느릴까?
많은 사람들은 법을 바꾸는 일을 “조항 몇 개 수정하면 되는 일”처럼 느낀다.
하지만 실제 입법은 단순한 문구 수정이 아니다. 하나의 조문을 바꾸면 그 조문과 연결된 다른 규정, 행정 실무, 판례, 예산, 하위법령, 국민의 권리·의무까지 함께 영향을 받는다. 그래서 법은 애초에 쉽게 못 바꾸게 만드는 방향으로 설계돼 있다.
특히 한국에서는 법안이 발의된 뒤 상임위원회 심사, 경우에 따라 법안소위 논의, 법제사법위원회의 체계·자구 심사, 본회의 의결을 거친다. 즉 법을 하나 바꾸는 데에도 여러 단계의 검토와 합의가 필요하다. 이것은 비효율이라기보다, 원칙적으로는 성급한 입법을 막기 위한 안전장치다.
그런데 왜 한국은 더 느리게 느껴질까?
문제는 여기서부터다.
법 개정이 원래 느린 것과, 체감상 지나치게 느린 것은 다르다.
한국의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신속처리안건, 이른바 패스트트랙이다. 이름만 들으면 빠르게 처리되는 제도처럼 느껴지지만, 실제 국회법상 구조는 상임위 심사 180일, 법사위 심사 90일, 본회의 상정 60일로 짜여 있다. 다 합치면 최장 330일까지 갈 수 있다. 즉 한국의 패스트트랙은 “며칠 만에 끝내는 초고속 절차”라기보다, 아무리 늦어도 이 정도 안에는 진행되도록 하는 지연 방지 장치에 더 가깝다.
그래서 국민 입장에서는 이상하게 느껴진다.
“패스트트랙인데 왜 1년 가까이 걸리지?”
이 질문은 아주 합리적이다. 이름은 빠른데, 실상은 생각보다 전혀 빠르지 않기 때문이다.
해외와 비교하면 한국이 유독 느린 편일까?
이 질문은 단순 비교가 쉽지 않다. 나라별로 대통령제인지 의원내각제인지, 상·하원 구조가 어떤지, 정부입법 비중이 높은지, 긴급입법 권한이 어느 정도인지가 다 다르기 때문이다. 그래서 “한국은 평균보다 몇 % 느리다” 같은 단일 지표로 말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체감 비교는 가능하다.
영국의 fast-tracked legislation은 정상 입법 절차를 유지하되 일정을 크게 압축하는 방식으로 설명된다. 즉 모든 단계를 거치긴 하지만, 정말 긴급한 상황에서는 수일 단위로도 입법이 가능하다. 반면 한국의 패스트트랙은 법률상 일정 자체가 수개월 단위로 설계되어 있다. 이 차이 때문에 한국의 “신속처리”는 해외의 “긴급입법”에 비해 훨씬 느리게 느껴질 수밖에 없다.
즉, 법 개정이 느린 건 세계 공통 현상이지만,
한국은 ‘빠른 절차’조차 충분히 빠르지 않게 설계된 면이 있다고 볼 수 있다.
단순히 국회의원이 일을 안 해서 그런 걸까?
이렇게 느린 이유를 전부 “국회의원이 일을 안 해서”라고만 말할 수는 없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정치의 책임이 없다고 하기도 어렵다.
최근 22대 국회는 같은 시점의 21대 국회보다 본회의 통과 법안 수가 445건 적었고, 발의 대비 처리율도 30.2%에서 23.9%로 낮아졌다는 보도가 나왔다. 배경으로는 여야 대치, 필리버스터, 본회의 안건 조정의 어려움이 지적됐다. 결국 구조적으로 느린 제도 위에 정치적 충돌이 더해지면서, 법안 처리가 더딘 모습이 나타나는 것이다.
즉 정리하면 이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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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법은 쉽게 못 바꾸게 설계돼 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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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 신속처리 제도도 충분히 빠르지 않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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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 여야 정쟁까지 겹치면서 실제 체감 속도는 더 느려진다
그래서 국민은 “구조가 느린 것”을 넘어서, “정치가 결단하지 않아서 더 늦어진다”고 느끼게 된다.
기존 법 조금 고치는 것도 왜 오래 걸릴까?
많은 사람이 특히 답답해하는 지점이 바로 이 부분이다.
새로운 법을 만드는 건 복잡할 수 있다. 그런데 이미 있는 법에서 조항 몇 개 수정하거나 처벌 수위를 조정하는 정도라면 금방 할 수 있어 보인다.
실제로 문구 수정 자체는 오래 걸릴 일이 아니다.
문제는 그 짧은 문구 하나가 실제로는 권리구조 전체를 건드리는 경우가 많다는 점이다. 형량을 올리면 비슷한 범죄와의 비례성, 양형기준, 집행유예 가능성, 다른 관련 조항과의 정합성까지 다시 따져야 한다. 민사 영역에서도 요건 하나를 손보면 상속권, 친권, 손해배상 범위 등 여러 효과가 연쇄적으로 바뀔 수 있다. 즉 “짧은 개정”이 항상 “가벼운 개정”은 아니다.
하지만 여기서도 결국 핵심은 기술적 어려움보다 정치적 우선순위와 결단 부족인 경우가 많다.
사회적으로 필요성이 오래 지적된 개정안도, 여야가 우선순위를 높이지 않으면 그대로 몇 년씩 미뤄진다. 그래서 국민 입장에서는 “저건 정말 마음만 먹으면 빨리 끝낼 수 있는 일 아닌가?”라는 불신이 생긴다.
피해자가 계속 생기는 법은 왜 더 빨리 못 고칠까?
이 부분이 가장 답답한 지점이다.
낡은 법이나 약한 제도 때문에 피해가 반복되는데도, 개정은 늘 사건이 크게 터진 뒤에야 움직이는 경우가 많다.
원칙적으로는 이런 분야일수록 더 빠르게 처리하는 것이 맞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고쳐야 한다”는 총론에는 동의해도, 어떻게 고칠지에서 갈린다. 처벌을 높일지, 보호명령을 강화할지, 수사와 집행을 손볼지, 위헌 가능성은 없는지, 부작용은 없는지 등을 두고 합의가 늦어진다. 그 결과 피해자 보호 필요성이 크더라도 법 개정은 느려진다.
결국 한국에서 자주 보이는 패턴은 이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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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가 오래 지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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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정치권은 우선순위를 높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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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사건이 터지고 여론이 폭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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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제야 급하게 법 개정을 추진한다
이 구조가 반복되면서,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왜 늘 피해가 생긴 뒤에야 바꾸는가”라는 불신을 갖게 된다.
“일단 빨리 개정하고, 나중에 보완”하는 방식은 안 될까?
완전히 불가능한 방식은 아니다.
오히려 다른 나라에서는 긴급입법, 한시법, 일몰조항 같은 형태로 먼저 빠르게 대응하고, 이후 다시 검토하는 구조를 활용하기도 한다. 한국 법제에서도 한시법과 일몰제 자체는 낯선 개념이 아니며, 일정한 기간 후 효력을 재검토하거나 종료하는 방식이 이미 설명되고 있다.
문제는 한국이 이런 방식을 적극적으로 쓰는 구조는 아니라는 점이다.
그리고 빠르게 만든 법은 심사가 부족해 부작용이 생길 위험도 있다. 그래서 현실에서는 “일단 빨리 만들고 나중에 손보자”가 말처럼 자주 쓰이지 않는다.
하지만 피해가 반복적으로 발생하는 분야라면, 오히려 이런 방식이 더 현실적일 수 있다.
예를 들어 피해자 발생형 법안에 한해 더 짧은 긴급처리 절차, 자동 재검토 조항, 일몰조항, 사후 평가 의무를 붙이면 “지금 먼저 막고, 나중에 다듬는” 방식이 가능해진다. 지금 한국에 부족한 것은 법을 너무 쉽게 바꾸는 제도가 아니라, 정말 시급한 법안만 골라 더 빨리 움직일 수 있는 별도 설계라고 볼 수 있다.
결론 : 한국만 유독 이상한가?
완전히 한국만의 문제는 아니다.
법 개정이 느린 것은 민주주의 국가에서 흔히 나타나는 현상이다. 법은 원래 쉽게 못 바꾸게 만들어져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국은 분명히 더 답답하게 느껴질 이유가 있다.
패스트트랙조차 충분히 빠르지 않고, 법사위와 위원회 구조가 병목이 되며, 정쟁이 심해질수록 민생법안까지 함께 묶여 지연되기 때문이다. 최근 국회 처리율 하락 역시 이런 체감을 더 강하게 만든다.
그래서 이 문제를 단순히 “국회의원이 일을 안 해서”라고만 볼 수는 없지만,
동시에 “구조가 느리다”는 말만으로 정치의 책임이 사라지는 것도 아니다.
진짜 문제는,
느리게 설계된 제도 위에 늦어도 된다는 정치가 올라가 있다는 점이다.
법은 신중해야 한다.
하지만 신중함과 지연은 다르다.
특히 피해자가 계속 생기는 분야라면, 이제는 “천천히 검토하는 입법”과 “빨리 막아야 하는 입법”을 구분하는 제도적 발상이 필요하다.
그래야 국민도 더 이상
“왜 꼭 사람이 다친 뒤에야 법이 바뀌는가”
라는 질문을 반복하지 않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