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은 과정인데, 우리는 왜 SNS에 ‘행복’을 올릴까

 

행복은 결과가 아니라 과정이라고들 말한다.

그 말이 유난히 잘 들리는 날이 있다. 행복이 어떤 “도착”이 아니라, 살아가는 동안 계속 흔들리고 변형되는 어떤 흐름이라는 사실이 선명해지는 순간.

그런데 이상하다. 과정이라면, 어째서 우리는 그 과정에서 “가장 결과처럼 보이는 장면”을 잘라 SNS에 올릴까.


나는 SNS를 자주 하지 않는다. 그래서인지 오히려 더 궁금해진다.

사람들은 왜 그렇게까지 자신의 행복을 ‘알리려’ 할까.

정말로 행복해서일까. 아니면 그 한 장의 사진이, 행복을 더 행복처럼 느끼게 해주기 때문일까.


1) 행복은 자주 ‘흔들리는 감정’이고, 우리는 ‘확정’을 원한다


행복은 안정적이지 않다.

기분은 변하고, 상황은 바뀌고, 마음은 쉽게 흐려진다. 그래서 인간은 종종 자기 감정을 스스로만 붙잡아두기 어렵다.


SNS는 그때 아주 간편한 도구가 된다.

사진 한 장, 문장 하나, 그리고 몇 개의 반응.

그 반응들은 “좋은 순간이었어”를 마치 도장 찍듯 확정해준다.


행복을 느끼는 것과 행복을 확인받는 것은 다르다.

그런데 우리는 자꾸 확인받는 쪽으로 끌린다.

행복이 흔들릴수록, 바깥의 확정은 더 달콤해진다.


2) 우리는 혼자 행복하기보다, ‘함께’ 행복하고 싶어 한다


행복이란 감정은 철저히 개인적이지만, 인간은 개인으로만 살지 않는다.

사람은 관계 속에서 의미를 만들고, 연결 속에서 자신을 확인한다.


SNS는 “나 잘 지내”라는 신호를 아주 값싸게 뿌릴 수 있는 공간이다.

모두에게 인사를 건네고, 모두에게 근황을 남긴다.

그 자체가 관계를 유지하는 방식이 된다.


때로는 행복을 올리는 행위가 행복의 과시가 아니라,

“나 아직 여기 있어”라는 존재의 표시일 수도 있다.

외로움이 커질수록, 존재를 확인받고 싶은 마음도 커진다.


3) 문제는 ‘의도’가 아니라 ‘구조’다


기록을 위해 올릴 수도 있다.

관계를 위해 올릴 수도 있다.

그 의도는 충분히 건강할 수 있다.


하지만 SNS는 대부분의 시간을 “기록하기”보다 “구경하기”에 쓰게 만든다.

그리고 구경은 곧 비교로 넘어간다. 거의 자동으로.


사람들은 대개 비교하려고 SNS에 들어가지 않는다.

그저 무심히 본다.

그런데 남의 삶은 늘 편집되어 있다. 가장 빛나는 순간만 올라오고, 가장 흠집 없는 표정만 남는다.

그 ‘선별된 장면’을 계속 보다 보면, 내 삶의 과정은 상대적으로 초라해 보이기 쉽다.


우리는 타인의 ‘결과’와 나의 ‘과정’을 비교한다.

그 비교는 정직하지 않다.

하지만 마음은 논리보다 빠르다.

마음은 그 불공정한 비교를 계속 습관으로 만든다.


4) 행복은 과정인데, SNS는 과정을 ‘결과처럼’ 보이게 만든다


현실의 과정은 대개 지저분하다.

불안도 있고, 애매함도 있고, 노력과 실패가 뒤섞인다.

그런데 SNS는 그 과정을 잘라 “완성된 장면”으로 보여준다.


그게 문제라기보다, 그게 반복될 때 문제가 된다.


과정을 살고 있는 나는, 어느 순간부터 결과를 보여주기 위해 과정을 사용하게 된다.

그리고 결과를 보여주기 위해 과정의 일부를 ‘연출’하기 시작한다.

행복이 내 안에서 자라나는 감정이 아니라,

타인의 눈 안에서 완성되는 이미지로 변질된다.


행복은 본래 나에게 일어나야 한다.

그런데 행복이 점점 “보이는 것”이 될 때,

행복은 더 이상 과정이 아니라 평가가 된다.


5) ‘건전하게 쓰기’가 어려운 이유는, 인간이 약해서가 아니라 시스템이 강해서다


SNS를 기록용으로만 쓰면 괜찮다는 말은 사실이다.

하지만 현실에서 그렇게 쓰기 어려운 이유는, 내가 의지가 약해서만이 아니다.

SNS는 본질적으로 사용자를 오래 머물게 해야 하고, 오래 머물게 하려면 남의 삶을 계속 보여주는 게 유리하다.

그래서 설계 자체가 “나의 기록”보다 “타인의 소비”를 부추긴다.


그 안에서 건전함은 개인의 노력으로만 지키기 어렵다.

건전함은 ‘각오’로 유지되는 게 아니라, ‘환경’으로 유지되는 경우가 많다.


6) 그래서 나는 이렇게 생각하게 된다


행복이 과정이라면,

내 삶의 과정이 불필요하게 흔들리는 환경에 굳이 나를 노출시켜야 할까.


SNS를 10분 하고 난 뒤의 내 마음을 보면 답이 보인다.

기분이 좋아지고 삶이 단단해진다면, 도구로 쓸 수 있다.

그런데 허무함, 초조함, 비교, 결핍이 더 자주 올라온다면,

그때는 “안 쓰는 것”이 회피가 아니라 설계다.


삶의 만족도는 거대한 결심으로 오르는 게 아니다.

작은 선택들, 작은 환경 조정들로 올라간다.

나에게 도움이 되는 쪽으로 삶을 배치하는 것,

그게 어쩌면 성인으로서 가장 현실적인 철학일지도 모른다.


맺으며: 행복을 증명하려는 순간, 행복은 흔들린다


행복은 원래 과정이다.

그 과정은 남에게 증명되기 위해 존재하지 않는다.

내가 살아내기 위해 존재한다.


물론 누군가는 그 과정의 일부를 공유하며 연결되고, 위로받고, 의미를 만들 수도 있다.

그 자체가 잘못은 아니다.


다만 잊지 말아야 한다.

행복이 “내 안에서” 자라는 감정인지,

아니면 “남의 눈에서” 완성되는 이미지인지.


행복을 보여주는 일이 많아질수록,

행복을 느끼는 일은 줄어들 수도 있다.

그 아이러니를 자각하는 것부터가, 어쩌면 과정으로서의 행복에 가장 가까운 첫걸음이다.

nenen

가족과 더 잘 살고싶은 더 행복하게 오래오래 살고싶은 소망을 가진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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